박근혜 탄핵전 여는 이하 작가 “부친의 정치철학에서 벗어나길”(펌)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치마폭에 개 한 마리를 감싸고 있다. 맹견이다.
주변을 감시하는 듯한 개의 눈초리가 사납다.
그 뒤에는 개 다섯 마리가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무기력하게 배를 깔고 누워 있거나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그 너머로 종이배 하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개들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꾸러진 배를 등지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정부를 풍자한 ‘박근혜 개판’ 포스터가 전국에 붙었다. 포스터를 그
린 사람은 이하 작가다.
이 작가는 정치풍자 포스터를 줄곧 그려 왔다. 지난해에는 전두환 비자금 환수 촉구를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18대 대선에서는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안철수 의원을 풍자한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이 작가는 7월에 ‘부정선거전-박근혜 탄핵전’ 전시를 준비 중이다.
-다음달에 ‘부정선거전-박근혜 탄핵전’을 연다.
“지난해 7월 ‘전두환 비자금 환수 촉구를 위한 특별전’을 열었다.
그때 ‘내년에는 탄핵전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 전시가 할 필요가 없거나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잘해서 전시가 아무 쓸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 전시는 꼭 해야 하는 전시가 됐다.
전시 제목은 ‘부정선거전’이다.
두 가지 뜻이다.
하나는 말 그대로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뜻이다.
또 다른 뜻은 ‘아비의 뜻이 먼저인 게 크다’다.
한자로 아비 부(父), 뜻 정(情), 먼저 선(先), 클 거(巨).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의 정치철학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는데,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전시는 어디에서 열리나.
“서울과 부산에서 한다. 서울은 벙커원에서 하는데, 부산 장소는 말해줄 수 없다.
전시장을 안 준다.
작년에 전두환전을 할 때도 전시장을 못구해서 전시장이 아닌 데서 했다.
관장들이 부담을 느낀다.
특별한 불이익이 있다기보다는 알아서 검열들을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보다 박근혜 대통령 때 전시장 구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사실 전시를 정상적으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도중에 작품이 떼어지거나 종이로 가려진다.
전시장에 검사가 다녀간 적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을 같이 걸어놓은 작품이었는데, 그때 검사가 다른 작품은 보지도 않고 이 작품만
보고서 ‘이씨가 이씨를 왜 욕해’ 하고 돌아갔다고 하더라.
관장에게는 명함을 남기고. 한마디로 협박을 한 건데, 관장이 놀라서 그 그림을 바로 창고에 넣어두었다.”
-선거 때 그렸던 정치풍자 포스터로 선관위에 고발당했고, 지난 6월 12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후보를 비하하고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다는 게 선관위가 내건 선거법 위반 사유였다.
잊을 수 없는 게 1심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했다.
불리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4%라고 하더라.
담당 변호사조차 나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마음을 비우고 맨마지막에 피고인 최후변론을 했다.
6장 되는 분량을 미리 써서 준비해갔다.
변론하러 나가는데 첫 글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울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유죄를 준다면, 더 이상 ‘너 그림 그리지 마’라는 뜻으로 알겠다.
그러면 앞으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무죄를 준다면 언젠가 아주 열심히 예술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여러분들이 무죄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보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 작가의 ‘박근혜 개판’ 포스터
-예술과 선전물의 차이가 뭔가.
내가 선동가였다면 내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을 흉측하게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예술의 영역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예술가로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검찰 조사 받을 때는 어땠나.
“예술은 머리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들은 감성이 없다.
검사들은 ‘포스터를 그리면 누가 돈 주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럼 ‘내 돈으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돈 어디서 나냐’고 또 묻는다.
나는 용접도 하고 벽화도 그리고 초상화도 그리면서 많지는 않지만 돈을 번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포스터 그리면 돈 버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또다시 ‘그럼 왜 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자기 돈 들여서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삶의 궤적이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있어야 말이 통하는데 말이 안 통하더라.
집요하게 물어본다. ‘야당에서 돈 받았느냐.’ 전두환 포스터 붙였을 때는 ‘5·18단체에서 돈 받았느냐’고 물어봤다.”
-전두환 풍자 포스터로 광고물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했는데, 최근에 세월호 참사 풍자를 그린 ‘박근혜 개판’
포스터는 어떻게 붙였나.
“이제 나도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박근혜 개판’ 포스터는 열다섯 번째 포스터다.
나는 이걸 ‘다단계 예술’이라고 부르는데, SNS를 통해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이번에는 108명이 신청을 했다.
그 사람들에게 몇 백장씩 보내준다.
1000장 넘게 보내준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 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나는 108명에게 보냈지만, 실제로 몇 사람이 포스터를 붙였는지는 모른다.
전국적으로 붙여준 사람들이 인증샷도 보내주고 하는데, 이들 중 네 분이 광고물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그 중 한 분이 강릉 분이었는데 형사 네 명이 집앞에서 철야 잠복근무까지 하면서 체포해 갔다고 하더라.”
-정치풍자 포스터는 언제부터 그리게 됐나.
“2009년 6월이다.
미국에 있을 때다.
‘귀여운 독재자’ ‘꽃미남 병사’ 시리즈를 그렸다.
오바마, 푸틴, 후진타오, 카다피, 빈 라덴, 김정일 등 6명의 독재자를 그렸다.
오바마는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경제독재도 독재다.
미국이 경제독재를 하고 있고, 그 상징이 오바마라고 생각했다.
‘꽃미남 병사’는 각 나라의 군인들을 예쁘게 그린 것이다.
탈레반, 북한군, 중국군, 남한군, 미군, 중국군을 그렸다.
군복도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예쁘게 입혔다.
실제로 그런 군복을 입으면 전쟁에서 가장 먼저 총 맞아서 죽을 것이다.
군인이라는 존재가 폭력적이고 국가주의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알고 보면 이들 하나하나도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하 작가. 이상훈 선임기자
-왜 정치풍자 포스터를 그리게 됐나.
“미국에 있을 때다.
원래 미술이 아니라 영화를 공부하러 간 것이데 지망하던 대학원에 떨어졌다.
갑자기 놀게 되면서 영상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에 있었는데, 그 지역이 밤에 좀 위험하다.
흑인들이 사는 지역인데, 가로등도 없고 가로등이 있으면 불량배들이 다 깨버린다.
담배를 사러 밤길을 가는 중에 누군가 2층에서 맞은편 벽을 향해 빔 프로젝트를 쏘고 있었다.
벽에 비친 이미지는 큰 장총을 든 사냥꾼이었다.
굉장히 근엄한 자세로 사냥꾼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이미지였는데, 이게 나한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줬다.
위험하고 삭막하고 무시무시한 거리에 이 이미지가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게 불량배들에게는 ‘너희들 여기서 위험한 짓 하지마’라는 메시지를 주고, 반대로 나같은 소시민들에게는 ‘내가
너희들 지켜볼게’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이게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이구나’라고 느꼈다.
미술로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미술을 안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미술이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주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에서 추모 포스터를 붙였다.
“평생 울면서 그림을 그려본 것은 처음이다.
고래를 그렸다.
‘고래가 되어라.
순수한 영혼 그대로 자유로운 고래가 되어라.
파도를 가르며 힘껏 물질하고 광활한 대양을 가로지르며 마음껏 꿈을 펼치거라.
너희들이 일으키는 하얀 파도를 보며 우린 너희들을 눈물로 그리워하마’라는 추모 메시지를 넣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화가이고 붙이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니 허락을 하시더라. 맨발로 붙이러 다녔다. 많이 울었다.”
-일각에서는 이 작가를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팝아티스트라고도 한다.
민중미술은 80년대의 사람들이 가졌던 의식을 정리해서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 시대에 그것과 똑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다.
2014년 현재 시민들이 갖는 의식이 있다.
이 의식을 정리해서 작품으로 만드는 게 지금의 예술가들이 해야 할 몫이다.”
-탄핵전을 하는 이유도 그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숨통이 없다.
민주사회를 모든 권력들이 포위하고 있다. 철조망을 쳐놓은 듯 틈이 없는 것이다.
그 철조망에 사람들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예술가들은 철조망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당에 소속된 것도 아니다.
탄핵전은 철조망에 몸을 던진다는 심정으로 세상에 던지는 것이다.
탄핵전이 이슈가 되든, 언론에 오르내리든, 재판을 받든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풍자 포스터 작가로서 이 작가가 보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세상의 중심은 예술이 아니다.
세상은 알아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은 세상을 가지려고 한다. 세상의 갑은 그저 세상이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세상을 갖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도, 그럴수록 더 바보가 될 뿐이다.
예술과 정치를 따지자면 예술이 정치보다 앞선다.
정치는 세상의 변화에서 가장 나중에 뒤따라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비극을 보자.
세월호는 비극이었고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그러면 화가들은 이와 관련한 추모 전시를 열고 가수들은 노래를 만든다.
세월호가 남긴 메시지와 의식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맨마지막에 법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세월호 특별법 같은 것이다.
시스템적으로 정치는 상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하수다.
좋은 정치는 자기보다 앞서가는 예술에 자신의 권력을 나눠줄 줄 아는 것이다.
나쁜 정치는 그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