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밤섬에 취재를 위해 들어갔습니다.
무인도이면서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출입이 쉽지 않은 곳이긴 해도, 출근길에 매일 서강대교를 지나며그
아래에 있는 밤섬을 보는 터라, 들어가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밤섬에 딱 내린 순간의 광경은 그냥 '신비롭다'는 말로 표현하긴 부족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철새도래지라는 말이 그대로 실감 나게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아서
마음대로 자란 갈대와 나무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무인도지만, 밤섬은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4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던 서울의 어엿한 주거지였습니다.
섬의 모양이 먹는 '밤'을 닮았다 해서 한자로는 '율도'란 이쁜 이름이 붙은 이 섬은 1968년 슬픈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바로 옆 여의도보다 더 큰 섬이었지만, '한강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섬 자체가 아예 폭파되어
없어지고 만 겁니다.
1968년 2월 10일 자 동아일보에는 '밤섬 폭파'제목으로 이런 기사가 실립니다.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의 일환으로 하구를 넓혀 한강 물이 잘 흐르도록 총 1만 7,393평의 밤섬을 폭파하기로 하였다.
이곳에는 부군당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밤섬은 주로 돌산으로 되어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이 섬을 폭파하고 여의도 축석에 필요한 잡석 11만 4천 세제곱미터를
캐낼 방침이다.
서울특별시는 거주민에게 토지와 건물 보상비를 지급,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청평 대지에 연립주택을 건설하여 5가구씩
살게 할 방침이다" 한강의 유속을 빠르게 하고, 여의도 제방을 쌓는 돌을 빼내려고 밤섬을 없앤 뒤 한동안 밤섬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밤섬이 한강의 수면위로 서서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폭파되고 남은 밤섬의 덩어리들에 자연적인 퇴적작용으로 모래와 흙이 쌓이면서 점점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부터 매년 평균 4천400제곱미터씩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한 밤섬은 1966년 최초 측정치보다 무려 6배가 늘어나서,
총 면적이 27만 9천 제곱미터로 엄청 불어났습니다.
27만 9천 제곱미터는 서울 용산공원의 4배나 되고, 시청 앞 서울광장 21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크기입니다.
퇴적학 분야의 권위자인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전승수 교수는 밤섬이 이렇게 몸집을 불린 것은 "원래 있었던 자연을
인공적으로 없앤 것에 대해 자연이 놀라운 자기 복원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강개발계획의 핵심은 한강의 수심을 5미터 내외로 일정하게 하고 한강 변을 직선화시킨 겁니다.
그 결과, 유속은 더 느려지게 됐고 자연적으로 형성됐던 백사장과 강변 습지가 없어지면서 자연 생태계의 평형상태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백사장이 없어지고 유속이 느려지니 폭파된 밤섬의 덩어리들에 모래와 흙 등이 더 많이 쌓이게 된 겁니다.
이렇게 다시 생긴 밤섬이 한강 가운데 있게 되면서 밤섬 안에 작은 수로들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이제 늪지, 습지
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겁니다.
한강 개발로 인해 다른 곳에서는 아주 얕은 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이 하나도 없었는데 밤섬이 다시 만들어지니까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겁 니다.
결국 밤섬이 원래 존재했던 것은 자연적으로 그럴 만했기 때문인데,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도
자연은 놀라운 힘으로 필요한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낸 겁니다.
저는 이제 서강대교를 지날 때마다 마주할 밤섬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만한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을 파괴해도, 자연은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해 놀라운 자기 복원력을
보여준다는 '기적'의 현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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