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도 부터 1970년도 까지 아니 요즘도 서울시내 오랜된 주택가에
초겨울쯤 되면 구슬프게 울리는 소리
메밀묵 사려 ~~~~~~~~~~~~~찹쌀떡
아이가 자는줄 알고 부부가 메밀묵을 사서 몰래 먹을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메밀묵 장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아마도 다른 골목으로 가는 모양이다.
조금 후 메밀묵 사려 ~~~~~~~~~목소리가
점점 가까히 들려온다.
바로 창문앞에서 메밀묵 ~~~~~~~~~하기에
창문을 열고 메밀묵 아저씨 메밀묵 하나와 찹쌀떡 하나 주세요
돈을 지불하고 묵과 떡을 들고 들어오니 어느새 아이들은 눈을 뜨고
않아 있다.
하는 수 없이 식구가 같이 둘러 않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든다.
과거에는 우리네 집안에 먹을 것이 별러 없어 이 메밀묵과 찹쌀떡이
유일한 야참이다.
메밀묵은 메밀로 쑨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메밀은 사실 전에는 우리 농사에서 매우 천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60~70년에는 지금과 같이 수리조합이 잘안되어 논농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비가오면 논에 벼를 심는데 비가 안오면 다음으로 우리농부들은 콩을
심는다.
그래도 비가 안오고 가물면 그때서야 메밀을 심는다.
메밀은 천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제가 KBS 방송 중계국에 근무 할때 네팔에 있는
히말라야 캉첸중가에 엄홍길 등반대장의 정상을 도전을 위한 생중계를 갔던
일이있다.
당시에 지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도 강원도 인제 용두리
정도는 될 것 갔다.
거기서 고소 훈련으로 약 5일 정도 머무르는데 조그마한 아이들 로 부터 어른
까지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있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보여 달라고 하니 우리의 보리알보다 작은 모양의 까망
열매 를 입에 물고 씹고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곳에는 사람도 몇가구 안살고 우리같은 등산인들이
오면 짐을 날라주고 멀마의 대가를 받고 생활하는 요즘 말로 포터 이다.
그들에게 우리와 같이 치약이나 칫솔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럼 그들이 그당시에 씹고 있던 그까망 보리알 갔은 것이 과연 무었인가.
5년전 우리 집사람이 손자일로 매우 놀란적이 있다.
병원에 가서 혈압을 재보니 무료 180/130 이다.
걱정이 태산 갔다.
전에는 저혈압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고혈압이라
하는 수 없이 혈압약을 먹기 시작 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은 항상 고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경우는 풍년이 되도 흉년이 되도 우리 농부들은
항상 걱정속에서 살어 간다.
풍년이 되면 쌀값이 떨어지고 흉년이 되면 비싼 왜국 쌀을 사먹어야
하고 약을 먹어도 어떤날은 혈압이 내려가고 어떤 날은 올라가고
이제는 할 수 없이 음식으로 치료를 해야 하기에 인터넷을 찾기 시작
했는데 혈압에 좋은 많은 음식이 있다.
그중 쓴메밀이 눈에 띠어 쓴메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알아보기 시작
했다.
그런대 당시는 문언이 별러 없고 당뇨와 치주염에만 나와 있어 다시
농업진흥청을 비롯하여 쓴메밀 박사님에게 도 물어 보고 하였건만
그리 좋은 대답을 들을 수 가 없었다.
그럼 일단 쓴메밀 종자라도 구해보자 하였으나 이또한 만만치가 않어
여기 저기 알아보아도 모두 거절 당했는데 강원도 평창 농업기술 센타
에서 나의 사정을 알고 조금 보내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강원도 평창이면 그래도 해발 600m 의 고지대 인대 비해
불과 300m 박에 안되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에서 과연 재배가 가능
할까 걱정이 되었다.
일단 종자를 받아 보니 내가 히말라야 갔을때 그곳 사람들이 즐겨 씹던
까망 보리알 같은 것과 같은 것이였다.
그곳은 무료 해발 4000m 그곳에서 자라는 쓴메밀이 불과 600m 아니면
300m 에서 재배가 가능 할까 걱정이 된다.
일단 4월 20일 경 파종을 하였다.
혹시나 해서 집 주위에 조금만 파종을 했는데 다행이 20일 정도 지나니
발하가 되어 새싹이 나오기 시작 하였다.
싹이 나면 무얼 하리 열매를 맺어야지 하는 생각에 그래도 열심히 물을
주고 주위의 풀고 뽑아주고 했는데 5월 말 쯤 꽃이 피더니 6월15일 쯤
초록색의 열매가 열리기 시작 하였다.
점점 세월이 흐르고 나니 6월 말쯤 초록색의 열매가 검정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평창 기술센타에 다시 문의 하니 월래는 고산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을 우리
토지와 기후에 맞게 농촌 진흥청에서 약간의 종자 개량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해 7월 중순쯤 수확을 하고 그자리에 또 한번 파종을 했다.
그런데 10월 말 정도 되는 또 열매가 열리고 수확이 가능 한걸 알었다.
그러니 1년에 2번 정도는 수확이 가능 한 것이다.
수확을 하였으나 먹는 방법이 문제다.
평창기술센타에 문의 하였으나 그곳에서는 그냥 차로 마신다고 한다.
우리는 쓴메밀을 후라이 판에 뽁아 보니 점점 더 까망게 되더니 나중에는
뻥티기 모양 터지기 시작 해서 그때 식히고 다른 그릇에 담아 조금식
주전자에 보리차 대신 쓴메밀 뽁은 걸 넣었다.
한참을 끍이고 나니 물이 노랑색으로 변하며 마시기 좋게 되어 그걸
마시기 시작 했다.
또한 수확한 쓴메밀을 마침 멧돌이 있어 멧돌에 갈어 메밀목을 쑤워 먹었는데
다음날 아침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메밀묵을 모두 버리고 그때부터 그냥 차로 마시기 시작 했다.
차는 2리터 주전자에 티수푼으로 1개 정도 끍여 겨울에는 그냥 마시고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목마르면 마시곤 했다.
그러부터 3년이 지난 후 집 사람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 왔다.
물론 쓴메밀 때문인지 건강관리를 잘해서인지 알 수 는 없지만
그래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 온건 만해도 다행이다.
이제는 아무리 화가나고 속이 상해도 혈압은 향상 130/75 정도 이다.
물론 만일 위하여 약은 복용 하지만 전에는 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높았다
낮았다 하였는데 이제는 매일 매일 혈압을 측정해도 항상 같은 혈압이다.
저역시 작년에 치주염으로 고생을 해서 병원대신 쓴메밀을 한달간 씹었더니
많이 좋아 졌다.
치과 병원에도 몇번 가서 치료를 했으나 마취재 주사와 함께 잇몸치료를
하고 나서 약 2일분 먹으면 한,두달은 괜찬은데 이런일을 매번 하는 것도
어렵고 해서 쓴메밀로 치료를 하기로 맘을 먹고 나서 한달간 쓴메밀을 매일
4회 이상 입에 넣고 씹기를 ................
한달 후 아니 일 주일이 지나니 정말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것과 갔은 효과가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한동안 쓴메밀을 씹지를 않었더니 다시 치주염이 생겨 요즘은 메일
3번 정도 입에 넣고 씹는다.
나이가 있어 그런가 보다.
요즘 농촌진흥청에서 쓴메밀에 대한 효능이 점점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매우 고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연구결과를 알아본 결과 쓴메밀이 3가지는 확실하게 효염이 있는것
갔다.
첫째 는 혈압이고 둘째는 당뇨이고 셋째는 치주염인 것 갔다.
이가 시려 찬물로 양치질 못하시는 분 쓴메밀 가루로 1주일간 양치질을
하면 찬물로 양치질은 물론 냉면이나 얼음물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치주염으로 고생하시는 분 한달간 만 뽁은 쓴메밀을 한번 씹어 보세요
단 좋아 졌다고 중지 하면 안됩니다.
혈압이나 당뇨를 가지신 분은 적어도 2년 이상 차로 드셔야 그효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3개월 정도 차로 드시고 나서 본인의 몸에 맞으면 그때 생식을 권해 드림니다.
너무 조급 하게 생각하지 꾸준히 노력하시길 바람니다.
또한 쓴메밀을 가지고 새싹을 길러 먹어 보았다.
콩나물 과 같이 비린내도 안 나고 매우 고소한 맞이 났다.
금년에는 쓴메밀이 수확되는 대로 쓴메밀 액기스를 만들어 볼려고 한다.
만약 액기스가 성공이 되면 당뇨와 혈압에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매우 좋은 일입니다.
또한 쓴메밀을 생산하여 다음은 판매가 문제 입니다.
요즘 우리 농촌에서는 생산은 물론 판매와 A/S 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물론 우리 농촌에서 곡식을 생산하는 건 마치 작은 공장 또는 큰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드는 것과 매 일반 이거든요
예를 들어 삼성이 전자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과 우리농촌에서 쌀을 생산에서
파는 것과 다를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나 우리 농촌에서 파는 쌀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겁니다.
이제는 많은 농촌분들이 친환경 농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고 또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곡물과 체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인터넷 판매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불러그를 만들기
시작 했어요
처음에는 그져 나의 일상 생활과 농사일기 식으로 적고 생각나면 카메라로
찍어 사진도 올리고 했지요
이제는 들에 나가면 처음부터 챙기는 공구가 카메라가 되었어요
사실 우리농촌에서 들에 나갈때 카메라를 들고 나가긴 좀 힘들거든요
모두 아직까지 씁관이 안되어서 그럴 겁니다.
또한 카메라를 들고 나가도 우선 농작물 돌보는 일이 급해 미리 사진을
찍어 놓지 못하고 꼭 나중에 일이 끝나면 찍곤 하지요
사실 자료란 시작전과 시작후에 일어나는 모든일이 중요하거든요
콩밭에 김매기를 하때 김매기 전의 사진과 김매기 후의 사진이 필요한데
우리 농촌에서는 항상 김매기 후의 사진만이 보입니다.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하고 나서 점점 익숙하니 이제는 홈페이지 를
만들 생각이 떠 오르던군요
광주시 기술센타에 가서 문의 해본결과 약간의 보조금이 있지만 경쟁이
좀 치얼 하다고 하던군요
우선 사업 계획서를 잘 쓰고 정말 사업 계획대로 할 수 있는지 실사를 하고
나서 평가를 한다음 선정 한다고 하기에 우선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나니 다음해 (2009년)사업에 저의 홈페이지 사업이 확정되어 이제는
나도 집을 가질 수 있구나 하니 감격 스러웠어요
몇 군대 홈페이지 제작 업소를 확인 하고 그동안 불로그 제작 하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홈페이지를 제작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신기 하기도 하고 또한 이게 정말 내집인가 하고 열심히
글도 쓰고 사진도 올리고 하니 네이버나 다음에 나의 홈페이지 이름
오작교농장을 검색하니 신기 하게도 나의 글과 함께 나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농사에 관한 자료와 농사에 대한
글을 작성하니 이제는 품목에 대한 겁색에서도 나의 홈페이지가 검색됨
을 알었습니다.
불과 2009년 6월 30일 오픈 후 2009년 11월 품목으로 검색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는 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후 2009년 12월 1일 농촌진흥청 고냉지 윤영호박사님의 쓴메밀
연구 논문이 팔표되자 저의 홈페이지도 많은 분들이 찾아 오던군요
그중에는 구매하시는 분도 많아 생산량이 많지 않아 할 수 없이 초과된
분들에게 일일이 다시 환불해주어야 했습니다.
금년에는 좀더 많은 수확을 위하여 콩대신 쓴메밀을 심었는데 날씨가 도와
주질않았지만 그런대로 평년 수확은 넘을것 갔네요
이제 그동안 쓴메밀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보내줘야 할것 갔습니다.
또한 작년에 처음으로 저의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구매해주신 분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삼지구옆초를 선물로 보내 주었습니다.
쓴메밀차 구매는 오작교농장에서
'오작교쓴메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어가는 여름 재배쓴메밀 (0) | 2010.10.03 |
---|---|
2010년 봄재배 쓴메밀차 매진에 대하여 (0) | 2010.09.22 |
2010년 쓴메밀차 판매에 즈음하여 (0) | 2010.07.20 |
쓴메밀 타작 (0) | 2010.07.16 |
쓴메밀 건조중 (0) | 2010.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