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주 술 이름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과주 브라질에서는 이과수
한국에서는 삼다수
우리는 이과주 를 마시러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과주 로 가는 첮차 만이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3번째 역까지
갈 수가 있다.
이과주 입구에서 4대의 버스벌써 대기 하고 있다.
일찍 왔건만 우리 버스 앞에 벌써 4대의 버스가 출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 앞의 버스는 표를 구입 하지 못했는지 출발을 못하고 있어 우리버스가
먼저 입구에 도착 했다.
여러분은 아마도 중국 황산에 가본신 분들이 있을겁니다.
황산정상에 갈려면 중간에 또 한번의 케이블칼르 갈아 타듯이 이과수 폭포
즉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는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 이 악마의 목구명입니다.
여기서 몇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딸려 드러가는 기분입니다.
잠시후 가이드가 기차 탑승권을 나우워 주고 우리는 약간 뛰어야만 했다.
첮차를 타기 위해 그리고 좋은 자리를 안기 위해 다행이 우리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 하는 바람에 모두가 좋은 자리를 안게 되었다.
기차는 출발 하고 한참을 가서야 3번째 역에 도착 하였다.
역에서 내려 10분정도 가면 우리가 이과주 폭포의 최대의 관심거리인 악마의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겄이다.
가는길은 철난간과 철판으로 바닥을 깔어 조금 미끄럼다.
모두 항상 긴장을 풀지 말고 조심해야만 했다.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 답게 폭포가 논앞에 있었다.
이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이곳까지 오는 구나 생각
했다.
악마의 목구멍에서 사진찍고 다시 3번째 역까지 오니 이제는 점심 시간이 되어
우리는 가까운 식당에 에약이되어 있는 데 식당은 12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잠시 근처를 산책하며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점심은 아르헨티나 산 소불고기의 등심과 안심 인데 어제 브라질에서 소불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땃일까 어째 입맞이 조금 벌러다.
고기는 맞이 있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악마의 목구명이면 몰라도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식당 주인의 배래로 버스가 식당 가까이 왔다.
따리서 중간열차 2번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지 않고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에제는 악마의 목구멍을 및에서 보기 위해 미꾸꼬 사파리
쪽으로 행했다.
물론 이것은 선택 관광이다.
1인당 100불 모두 참여하는 데 2사람만이 타질 않았다.
왜냐하면 부부 인데 부인이 팔을 기브스 하고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에는 친환경 차량을 이용하여 정글을 통과하여 이과주 강가에 도착
하여 다시 보트를 탓다.
보트는 강을 거슬러 올라 폭포가 솟아지는 입구까지 거서 물이 떨어지는 관경을
사진에 담을 수 가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이과주 공항으로 가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하는 국내선에
탑승 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1516년 후안디라스 데 솔리스 의 탑험으로 발견되었으며 세계
지도에서는 1554년 떼라 아르헨티나 라는 이름으로 등장 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었지만 19세기초 유럽 시민혁명의 영향
으로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본국 정복 등이 동기가 되어 본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 하고 임시정부를 수립 하였다.(1810.10.10.)
그 후 내란을 거쳐 1816년 7월 9일 두꾸만 회의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수도로
하는 중앙집권적 공화국(라쁠라따) 의 성립을 선연함으로서 비로소 아르헨티나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쟁과 내란 혁명을 거듭하였으며 1864
~1870년에는 파라과이와의 전쟁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하였다.
19세기 말 부터는 유럽계 자본이 유입되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계의 이민이
활발해지면서 급속히 공업화를 추진해왔으나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으로 맥류와 목초료의 경작과 소 양 돼지 등이 사육이
이루워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 부에노스 아이레스
면적 : 2,579,221Km(한반도의 12.6배)
주요도시 : 코르토바,로사리오,마르델쁠라타,멘도사
주요민족 : 이테리계(40%),스페인계(30%),기타 유럽계 백인(25%)
주요언어 : 스페인어
종교 : 카톨릭(95%),기타(5%)
쁘에르또 이과주
쁘에르또 이과주시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국경에 위치해 있는 아르헨
티나의 북부도시로 이과수 관광을 위한 기점 도시이다.
이과수 폭포를 내려다 보면서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의 기점인 Puerto Canoas 에
도착 하게 된다.
Puerto Canoas 에서 이과수 최대의 하이라리트인 Garganta del Diabio(악마의 숨
통) 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로 장대한 이과수의 짐면목을 볼 수 있다.
탱고의 본고장 라플라타 강어귀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는 스페인의 귀족 출신인 페드로 데 멘도사에
의해서 1536년에 건립되었다.
초기에 이곳이 도시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까지는 골치아픈 문제글이
많이 있었다.
계속되는 가난과 원주민 인디언들의 침입으로 초기의 정착민들은 1573년
멘도사에 의해 세워진 아순시온의 상류지역으로 피난을 가게될 정도였다.
그후 40년 이 흐른뒤 1580년에 한 데 가라이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제대로된 도시의 모습으로 다시 건립되었다.
이러한 불운의 시작에도 불구 하고 이 도시는 진보가 계속 되어 왔다.
식민지 시대동안의 진보와 독립의 여파는 그리빠르지는 않었지만 19세기
후반까지 영향을 주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가장 활기차며 인구가 많은 도시
이다.
많은 유럽 사람들의 이주로 도시의 분위기는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며 특히
1929년 유명한 프랑스의 건축가 Le Corbusier 는 욕망이 넘치는 거대한 도시
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색깔있는 작은 마을 보카지구
입 이란 뜻을 가진 라 보카(La Boca) 는 아마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컬러플한 지역일 것이다.
항구를 따라 위치하며 이곳에서 다양한 색으로 페인트 칠한 작은 집들이 매우
많다.
마치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마을을 온듯한 느낌을 준다.
메인 스트리트는 카미닌토이다.
이곳에는 많은 공예가와 미술가들의 시장 텡고쏘 전형적인 이탈리아 술집들이
가장 재미 있는 볼거리다.
매 주말마다 이곳에서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술을 맛볼수도 있다.
레꼴레따 묘지(Cementerios Recoleta)
1882년에 개설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묘지로
묘소에 따라 그 지위가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아르헨티나인 들에게는 최상의
장소이다.
전통적인 장식과 조각상들이 화려해 묘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
이다.
150평방미터 의 면적에 총 6400개의 납골당이 있으며 이 중에 70개가 나라
의 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다.
역대 대통령 13인과 일명 에비타로 불리는 마리아 에바두아르테도 이곳에
매장 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 유명인사들이 잠들고 있다.
화려한 핑크빛 궁전 - 대통령궁
벽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 있기 때문에 Casa Rosada(장미빛 집)라고 불리
우는 대통령궁은 5월 광장의 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대통령 관저는 핑크빛 내부로 유명하며 대통령궁 답게 화려하고
사치스런 가구로 체워져 있다.
이곳의 지하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추변에는 산마르틴 근위병들이 그들의 적색과 파란색의 유니품을 입고
주위의 보초를 서고 있다.
국회의사당과 광장
지상에서 80m 높이의 구리돔 지붕이 인상적인 국회의사당은 5월의 대로
서쪽끝에 위치해 있다.
착공한지 8년만인 1906년에 완공되었으며 군정동안 폐쇄되었다가 1983년
민정이양과 이후에 다시 국회의사당으로 쓰고 있다.
의사당 앞의 광장에는 분수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복제품, 콘도르와
천사를 조합한 기념비 등이 서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광장의 동쪽 5월 대로와 리바다비아 대로가 만나는 지점이 아르헨티나의
지리적 중심점이다.
카빌도(Cabildo)
현재 부에노스 이이레스 의 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는 행정기관으로 쓰였다.
1725년에 건축되어 몇 차례의 개축 및 수리를 거쳐 1940년에 현재의 모습
을 갖게 되었다.
건물 2층에는 5월 혁명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910년 5월 25일 이곳
에서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박물관에는 아르헨티나 독립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물품들이 다수 전시
되어 있다.
이런 탱고의 발생지인 이르헨티나에서 만 볼 수 있는 정통 탱고쏘이다.
좁은 무대위에서 많은 밴드가 더 없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며 이어 여러
커플들이 탱고의 정수를 보여준다.
우리일행 일부는 저녁을 먹고 나서 아르헨티나의 전통 춤을 감상 하였다.
탱고 쏘 - TANGO SHOW (욥션)
쿠바의 무곡이 19세기 중엽에 부에노스 아이리스에 들어와 아르헨티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탱고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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