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 이제는 작별인사를 해야한다.
인도
◈ 수도 : 뉴델리(New Delhi)
◈인구 : 1,103,371,000명(2006년 기준)
◈기후 : 대체로 열대몬순 기후
◈면적 : 3,287,263㎢(한반도의 약 15배)
◈주요도시 : 뉴델리(New Delhi), 콜카타(Calcutta), 뭄바이(Mumbai), 마드라스(Madras)
◈주요민족 : 인도 아리안계(중북부/70%), 드라비다계(남부/25%), 몽고계(동북부/3%)
◈주요언어 : 힌디어(Hindi), 영어(English)
◈종교 : 힌두교(80.46%), 무슬림(13.43%), 기독교(2.34%), 시크교(1.87%), 불교(0.77%)
개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문명과 더불어 세계 4대문명으로 불리우는 인더스문명은 이미 BC 2300년부터 최전성기를 맞기 시작하여 BC 1800년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번성시대를 누렸다.
BC 1000년 경에는 아리아인의 진출로 갠지스강 유역까지 확장, 발전하게 된다. 이후 17세기부터 시작된
서방국가의 잦은 침입으로 결국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며 이때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민족주의 운동이 전 인도를 하나로 묶어 마침내 1947년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영토와 다양한 종교, 현재까지 이어지는 카스트제도 등은 독립이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를 분리 독립시켰고 지금까지도 캐시미르 지방 등에서 잦은 분쟁이 일어나는 등 현대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한민족으로서 민족적 동질성을 지니고 태어나, 그 사회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인도에 가게되면 여러가지 충격에 직면하게 된다.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에서는 제각기 개성이 강한 인간과 집단이 시끌벅적하게 모여 있으며, 갖가지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예사로 일어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곳이 인도이다.
인도에는 수많은 인종의 땀냄새, 각종 자동차소리부터 확성기를 통해서 들리는 경전 읊는 소리까지 각종 소음, 색의 홍수, 아우성, 모래 먼지, 강한 햇볕 등 그야말로 온갖 자극이 여행자들을 기다리며 맞이하고 있다.
또한 인도는 크기가 거대한만큼 인간 원형들이 총출연하는 곳이다.
너무도 성스러운 인간부터 물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 우아함과 천진난만한 모습을 잃지 않고 그대로
성장한 것 같은 사람, 인도의 역사처럼 복잡한 굴절을 보여주는 인물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유형이
모여있다.
지리
중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동서로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갠지스강까지,
남북으로는 히말라야에서 케이프 코모린까지의 광대한 영토를 지닌 나라이다.
총면적은 한반도의 약 16배에 달하는 3,287,782㎢이며, 산악지대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와 평균고도 1,000m인 데칸고원이 있으며, 평야지대는 북인도의 갠지스강 유역과 마하나리, 나르마다강 이남 유역을 들 수 있다.
남북의 길이가 3,219㎞에 달하는 인도는 다양한 지형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기후
남북의 길이가 3,219㎞에 달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상당한 기후 차이를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몬순기후를 보이나 남인도의 경우 1년 내내 열대기후를 나타내고 히말라야 지방의 경우는
1년 내내 춥다.
보통 2월중순 ~ 3월은 봄, 4 ~ 6월은 여름, 10 ~ 11월은 가을, 11월 중순 ~ 3월은 겨울이며 6 ~ 9월에는 우기가 있다.
특히 아샘지방은 다우지역으로 세계적인 '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가을인 10 ~ 11월에는 각 지역별로 기후차가 많이 나타나며, 이 시기에 히말라야에서는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남부지역에서는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고원지대에는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많이 떨어져 일교차가 크다.
사회
총 7개가 넘는 인종에 인구는 1,103,371,000명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힌두어외의 18개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영어는 보조 공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종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이외에 불교,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이 있다. 인도사회는 많은 인종, 언어, 종교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다양한 사회이며, 생활수준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 전지역에 영향을 끼쳤던 인도문화의 저력과 3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인도의 문화적, 정신적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의 사회, 문화적으로 가장 큰 특징은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의 네계급으로 나뉘며 인도의 교육정도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에 모닝콜이 올려 펴젔다.
6시에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이제는 이곳의 마지막 관광을 마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6시 30분 버스에 올라 1시간 정도 달린 다음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엘로라 석굴을 보기 위함이다.
엘로라 석굴은 아우람 가바드에서 북서지점에 있는 바위산 서쪽 사면에 석굴 34개가 2Km 걸처서 파여져 있는 석굴이다.
남쪽에서 세어 제1굴에서 12국 까지는 불교 굴로 6~7 세기에 개국되었다.
여기에 이르는 제29굴 까지는 흰두교 석굴이다.
최후의 5국이 자이나교의 석굴로 8~10세기에 만들어 졌다.
그 형식은 하나의 모두 다르다.
가장 훌륭한 건축은 제16굴의 카일라사나타 사원에서 볼 수 있다.
엘로라 석굴은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 되어 있다.
오전에 엘로나 석굴을 구경하니 광관객등이 없어 한적하게 관람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위로 올라가니 원숭이들이 회의를 하는지 모여 않아 있다.
어린새끼는 어미등에 없혀 있고 나머지원숭이들은 나무와 땅을 오르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위에 모여 있는 원숭이 얼굴이 유낙 붉은색이고, 아래원숭이는 얼굴이 까맣다.
그래서 그 두놈이 서러 역역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차량에 올라 올려고 하니 이곳에서도 역시 물건파는 분들로 많은 사람이 들끌고 있었다.
이어서 버스에 올라 이제 9시간에 걸쳐 긴 여정을 다시 떠나야 한다.
붐바이로 출발을 해야한다.
버스는 고속도로길을 달려 9시간 만에 붐바이에 도착하였으니 이곳역시 많은 차량으로 좀처럼 앞으로 가질못한다,
겨우 얼마를 가니 이번에는 경찰관에게 걸렸다,
이유인즉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온것이다.
오랜 승강이 끝에 해결이 되어 인도문에 도착하니 이곳에서는 꽃마차들이 느러서있다.
아마도 꽃마차를 타고 시내를 도는 모양이다.
인도문 입구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짐검사를 한다.
혹시나 폭탄이나 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날이 어두워 커메라를 잘 찍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버스에 올라 해안도로로 갔다.
이곳에는 많은 여인들이 나와서 바닷가를 보며 서로 사랑을 속사기기도 하고 가족들이 나와서 야간의 산책을 즐긴다.
이곳은 약 3Km 의 해안변이 있는데 밤이라서 별러 실감이 나질 안는다.
이제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곳으로 우리는 이동을 하였다.
호텔안은 매우 으리으리 한데 막상 식당에 올라가니 가지수에 비해서 별려인것 갔았다.
그래도 모두들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양은 좀 작았으니 그래도 아무런 불평 없이 먹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이제 우리는 인도를 떠나야 하는 출국 신고서를 호텔로비에서 작성하여 여권과 함께 들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입구에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검사하기에 가이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냥 공항 박에서 작별인사를 해야만 한다.
공안 안으로 들어오니 인천 공항행 비행기 일정이 나왔다.
그곳으로 가서 짐을부치고 비행기표를 받고 나서 이번에는 출국장으로 다시 출국 신고를 한다.
출국신고를 한 다음 본인의 손가방을 검사 한 후 드디어 우리일행은 면세점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면세점을 이리저리 몇 번을 돌아다녀도 살만한 것이 없다.
공항면세점 안에서 물건을 깍아주는 인도의 몸바이 공항 그래도 사람이 사는 맛을 느끼는 인도 이제는 안녕이다.
아우랑 가바드
아우랑 가바드는 붐바이 북동쪽에 있는 57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왕비를 기리기 위해 Aurangzeb왕이 세운 영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1610년 건립되었다. 아우랑가바드는 주도인 뭄바이와 푸네(Pune)를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는 역동적인 도시이며, 뭄바이와 뉴델리 등의 주요도시와도 항공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도시는 무굴왕국의 마지막 황제인 아우랑제브(Aurangzeb, 1659-1707 AD)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원래의 이름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뜻하는 '카드키(Khadki)'였는데, 후에 파테 나가르(Fateh Nagar)에 의해 개명되었다. 아우랑제브는 데칸지방을 다스리는 동안에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이곳은 지형적으로는 대부분 데칸고원이 차지) 오늘날에는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의 일부로서 마라트와다(Marathwada)과 잇닿아 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 로드'에 있는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지닌 아우랑가바드는 부근 파이탄에서 생산되었던 섬세한 수와 다양한 구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천으로 그리스, 로마, 이집트 시장을 열었다.
아우랑가바드는 역대 사타바하나스, 바카타카스, 차루캬스, 라시트라쿠타스, 아우랑가바드 등의 왕조가 통치하면서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다이아네시바르(Dyaneshwar), 에크나스(Eknath), 람다스(Ramdas), 왈리(Wali), 시라주(Siraj) 등의 위대한 시인, 철학자, 성인등의 탄생과 영감을 주었다.
아우랑가바드에는 여러개의 볼거리가 있는데, 아우랑제브의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무덤, 비비 카 막바라(BIBI-KA-MAQBARA)와 수확한 밀을 방아찢는 수차 판차키(Pan Chakki), 1610년 이 도시를 건설한 암바르의 모스크 등이 볼만하며, 지리적으로 아잔타와 엘로라(북서 20km 지점)의 석굴사원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주요 역할을 한다.
'오작교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랑풍선을 타고 여행가기 (0) | 2013.03.15 |
---|---|
계란 껍질체 먹는 한국 관광객 (0) | 2013.01.06 |
맛 과 양으로 승부하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명동 칼국수 (0) | 2013.01.05 |
인도의 참 맛을 보여주는 인도기차여행 (0) | 2013.01.03 |
나의 일생을 다시 50년 전으로 되돌린 인도여행 (0) | 2013.01.02 |